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고싶습니다.
상대방과 마주 앉아 몇 시간씩 고민하는 바둑을 좋아하고,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던 물리학에 빠져 요즘은 학부생들이 보는 Halliday 물리학 문제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습니다.
딱히 어디에 써먹으려는건 아닙니다.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파고드는 것 자체에 쾌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일할 때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깊게 파고들고, 한번 시작한 문제는 어떻게든 결과까지 만들어보고 싶어 합니다.
아래부터는 경험에 비추어 제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했습니다.
개발을 처음 접했던 학부생 시절에도 실력을 빠르게 키우려면 결국 많은 프로젝트 안에 스스로를 강제로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학기 동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코딩과 관련된 거의 모든 공모전에 참가했습니다.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40~50개 정도였고, 모든 결과물이 훌륭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중 11개의 대회에서 수상했습니다.
그렇게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운이 좋게도 일하고 싶었던 회사인 레브잇에 Product Engineer로 합류했습니다.
레브잇에서는 정말 실력이 뛰어난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제 눈에 천재처럼 보이는 이들이 열심히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 훨씬 더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출퇴근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회사 바로 옆 건물로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입사한 지 약 10개월이 되었는데, 평일 자정 전에 퇴근한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일했습니다.
틈이 날 때마다 팀의 코드를 뜯어봤고, 이해되지 않는 기술이 나오면 열심히 AI에게 물어봤습니다. 제가 경험이 짧기 때문에 부족할 수밖에 없는 운영체제,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분산처리 같은 fundamentals도 의식적으로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또 많은 Input을 투입하고나니, 단기간에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고 스스로 체감합니다.
물론 working time 그 자체를 미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현재 능력보다 큰 문제를 맡았을 때, 부족한 부분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절대적인 투입량을 늘리는 것은 제가 가장 오래 사용해온 방법입니다.
AI 덕분에 코드를 만드는 일은 갈수록 쉬워지고 있습니다. 결국 고객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얼마나 좋은 가설을 세우고, 잘 실행하느냐가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재학 중에 1년정도 창업하며 일백제라는 교육 컨텐츠 플랫폼을 개발해서 운영했습니다. 타겟이었던 수험생들이 어디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고 싶어서 하루에 알림이 999+개씩 쌓이는 커뮤니티나 오픈채팅방을 매일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직접 대화를 나눴고, 수험생과 잠재 고객을 40~50명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살다 보니 저도 진짜 수험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들의 언어와 고민을 제품에 하나씩 녹였고, 출시 이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이 왔습니다. 한 해에 시험치러가는 1만명의 수험생 시장에서 출시 1개월 만에 1,200명이 넘는 유저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고,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않는 지금도 감사하게 UGC(사용자가 직접 만든 후기와 콘텐츠)가 꾸준히 생기며 사랑받고있습니다.

제일 처음 일했던 인슈어테크 스타트업에서는 Problem Solver 역할로 입사하여 B2B 영업을 주로 맡으면서 사이드로 백오피스 전반을 담당했었습니다. 그때 당시 백오피스 담당자가 퇴사한 상태였고, 신규 채용이 어려운 상황이라 팀에서 발생하는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제가 조금 더 시간을 내서 백오피스 업무까지 맡았습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한글, PPT, 엑셀 등 문서 작업 능력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정부지원사업 R&D를 홀로 열심히 준비해서 팀에 2억 원의 자금조달 및 계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또한 공모전, 사무실 입주 등 여러 서류와 커뮤니케이션 작업을 제가 혼자 도맡아서 해결했습니다.
이때 6개월 정도 백오피스에 집중했던 덕에 저는 지금도 문서 작업, 서류 만드는 건 귀신소리 들을 정도로 자신있습니다.
개발자가 되기위해 의도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했습니다.
22년도에 python, pytorch 등으로 머신러닝, 딥러닝을 하나씩 따라쳐보고 tensorflow를 만지며 코딩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처음 제품을 만든 것은 JavaScript로 만든 작은 웹 게임이었습니다. gpt3와 하루 종일 붙잡고 코드를 물어보고 구글에 검색하며 개발했습니다. 만들어진 코드가 어떻게, 왜 동작하는지 궁금하기 시작한 때부터 끝도없이 찾아봤습니다.
[첫 배포 서비스인, 회사에서 몰래 할 수 있는 게임 모음집]
독학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끝없이 나왔습니다. 하나를 이해하면 그 아래에 열 개의 질문이 더 생겼습니다.
Node.js를 공부하다가 Event Loop와 libuv를 찾아보고, 거기서 다시 Thread와 Process의 차이를 공부했습니다. API가 느려지는 이유를 고민하다가 네트워크와 데이터베이스를 공부했고, 데이터가 많아지면서 한 대의 서버에서 처리하는 것과 여러 머신에 나눠 처리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서비스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점점 컴퓨터 시스템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 재미있어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보이지않는 곳에서 서비스를 지켜주는 백엔드 기술에 관심이 많고, 지금은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법론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파고들며 개발을 배워왔지만, 정작 지금 제가 일하는 방식을 가장 크게 바꾼 건 AI였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AI의 수혜를 크게 받은 개발자라고 생각합니다. 개발 과정 대부분에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2026년부터는 코드를 직접 작성하기보다 문제를 정의하고 방향을 잡은 뒤 구현 자체는 AI에게 맡기는 비중이 훨씬 커졌습니다.
새로운 모델이나 도구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써보는 편입니다. 올해 초에는 Agent Harness에 꽂혀서 GitHub에서 Star가 많은 오픈소스라면 거의 다 찍먹해봤습니다. Ralph Loop를 돌려놓은 뒤에야 마음 편히 잠들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올해 중순부터는 대부분의 프론티어 모델에 하네스가 이미 탑재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껴서,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context로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MCP, skills 등으로 돌아와 AI가 일하는 환경 자체를 넓히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Slack, Notion, Email 같은 업무 도구부터 Datadog, Sentry, Databricks 같은 운영·데이터 시스템까지 연결해서 에이전트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감을 만지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써봤는데, 써볼수록 개인의 생산성과 실행 속도에 꽤 큰 격차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더 진지하게,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 자체를 하나의 역량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오히려 몇 년 전에는 백엔드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로그인 기능 하나를 만들며 gpt3에게 질문하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한 명의 실무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일이라는 게 반드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운이 좋게도 이쪽 일은 꽤 재미있습니다.